누군가가 내게 와서 교육, 이 무어냐고 물으면 내 입은 우물쭈물 대다 한참이 지나서야 얼토당토 않은 한두마디쯤 늘어 놓고 마는 수준에 그칠 것이다.
교육에 대한 일가견도 조예도 학식도 노하우도 없지만, 한국의 교육(혹은 입시)환경은 거의 비정상에 가깝다. 고학력자들은 많아졌지만, 그래- 더 많이 배워서 행복해졌냐는 질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주저한다.
더 많이 아는 것이, 더 많이 배우는 것이 (적어도 제도권의 울타리에서)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을 교육이라, 배움이라 칭하기는… 어딘가 모르게 낯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20120302
1. 이해는 오해의 전부에 지나지 않는다. 2. 행동은 잡념을 없앤다. 3. 된다고 믿든 안 된다고 믿든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 4. 평범하게 살지 않길 바라면서 왜 평범하게 노력하는가? 5. 많이 가진자와 적게 필요한 자, 누가 부유한가? 6. 인권은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는 가치다. 7. 편한 관계, 그러나 성숙과 진전이 없는 관계. 주변에 있는지 돌아볼 것. 8. 성공한 삶은 실패가 넘어뜨리지 못한 삶의 퇴적물이다.
20120308
친구와
편의점에서
진지한얘기를하는데
Amazing Grace가 흘러나왔다.
은혜와지혜가필요한대화였는데
우연일수도있지만감사해서울컥했다.
20120317
달콤함을 대가로 언제나 손 힘좀 써야했던 오렌지가 오늘따라 귤처럼 잘 까지기도 하고, 너무 가기 싫은 수업이었지만 막상 가서 들으니 그날따라 강의가 귀에 쏙쏙 박히기도 하고, 평소에 얼굴 한번 보기 힘든 친구를 우연히 두번이나 만나 시덥잖은 인생사를 떠들며 수업 가는 길을 함께하기도 한다.
삶이 사실 그렇다. 매일 매일이 똑같은듯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시각각 모든것들이 어제의 그것과는 다르다. 매일 매일이 새롭다. 매 순간이 경이롭다. 그것이 오늘도 눈을 뜰 이유가 된다. 눈을 깜빡일 이유가 된다.
20120320
문턱이 낮은 사람이 되고 싶다.
중3때 담임 선생님을 떠올린다. 학원 가는 길, 문득 쌤께 걸려온 전화. 횡설수설 어눌한 말투.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신체의 비틀거림. 그래, 소위 ‘술주정’ 이었다. 학급을 끔찍이 사랑했던 열정 많은 담임은, 학급을 이끈다는 것이 맘처럼 되지 않음에 속상해 했다. 30대 초반의 담임은 16살인 내게 전화를 걸어, ‘나 잘 하고 있는거냐-‘고 했다.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몇마디 심심한 위로를 건넸을 것이다.
담임은 나를, 16살- 에고가 덜 완성된 미성숙한 아이, 로 본것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반의 ‘학급 구성원’으로 인정해 준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생에서 가장 진정성을 느껴 본 적이 언제인가’ 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나는 주저 없이 이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낮은 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한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어느 지점에 있는가. 누군가에게 아픔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참 씁쓸한 일이다. 혹 누군가가 내 문턱을 넘으려다 걸려 넘어져 멍들지는 않았을까. 머리에 스치는 몇몇의 이름… 전할 수 없는 사과를 전한다.
문턱이 낮은 사람이 되고 싶다.
20120402
지혜 없음을
사랑 없음을 고백하는 기도는
온종일 해도 그 끝을 볼 수 없다.
약함을,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
강함으로, 충만함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다
20120403
1. 사형제는 범죄억제에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여러 연구들을 통해 입증되었다. 2. 가석방 없는 종신형- 이라는 대안을 통해서도 충분히 흉악범을 처벌할 수 있다. 3. 범죄자를 죽인다고 해서 피해자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4. 상당수의 피해자 유가족들이 ‘보복’의 이름으로 범죄자들을 사형 하는 것에 있어서 반대하고 있다.
20120424
태중이형이 알려줘서, 레이디가가 공연 논란 관련 백지연의 끝장토론 편을 이송과 함께 봤다. 하… 기독교인들은 꼭 보시라. 기도가 절로 나온다. 토론 주제는 ‘청소년 유해판정’ 논란이었지만, 역시나 가장 큰 화두는 ‘GLBT(Gay, Lesbian, Bi-sexual, Transgender)’ 문제였다.
진정 자살을 조장하는 것이 누구냐고 묻는 황진미의 말이 왼쪽 귀에, 기어코 성서를 폭력의 책으로 전락시키고 마는 목사님의 말이 오른쪽 귀에 들어와 박혔다. (둘 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재밌는 대목일 것이다.) 인생은 아름다워- 학생인권조례- 레이디가가, 까지. 최근 내가 기억하는 보수 교계의 호모포비아 전력이다. 이러한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차치하더라도, 실제로는 셀 수도 없이 더 많을것이다. 그 중심에 ‘한기총’이 자리잡고 있다. 레이디가가와 한기총 중 누가 과연 더 악한가! 한기총은 많은 성적소수자들을 사실상 ‘죽였고’, 또한 지금도 여전히 ‘죽이고’ 있다.
기독교인에게 부과된 과제는 내가 볼 때 크게 두가지다. 1. 동성애는 죄냐 아니냐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 2. 죄라면,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지혜로운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 이다. 1번은 뜨거운 감자라 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치자. 그러나, 2번에 대해서는, 한국교회는 확실히 ‘틀렸다’. ‘무지와 몽매’ 라는 단어 앞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자유할 수 있는가? 실제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GLBT에 대해 조금도 아는 것이 없는 경우가 정말로 허다하다! 그저 단편적인 지식(지식이라 부르기도 뭐한) 몇가지를 조악스럽게 조합한 후, 입맛에 맞는 성서 구절 몇가지를 긁어 와 첨가한 후 ‘사랑’, ‘공의’란 이름으로 세상에 떡- 하니 내 놓는다. 지옥의 레시피다!
이 부분에 관하여서 만큼은, 한국교회는 진중권에게 24시간 ‘털려도’- 항변 할 자격이 전혀 없다!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으로도 나 죽은 게 아깝지 않아요.” 라고 말하고 자살한 천주교인 성적소수자 육우당. 그와 한기총을 바라보는 하늘의 목소리가 진정 무엇일지 궁금하다.
고린도전서 4:5)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는, 아무것도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어둠 속에 감추인 것들을 환히 나타내시며, 마음 속의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20120507
형사 재판에 있어서 최대의 사명은
죄 없는 사람을 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열 명의 죄인을 놓친다 할지라도
죄 없는 한 사람을 벌하지 말지어다!
20120514
16-18.
우리, 과연 축제를 하는 것이 옳을까?
대.동.제. 크게 하나되어 즐거움을 나눈다는 뜻이리라. 학내 노동자가 한줌의 재로 뿌려진 지, 채 일주일이 되지도 않았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하나됨이란 무엇을 위함인가. 무엇을 향함인가.
좋은게 좋은거라고, 그냥 즐기면 될 일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적한 A동 분향소를 등지고서 축제를 즐길 자신이 내게는 아직 없다. 맥없이 늘어져 축 처진 얼굴로,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고 있는 유족들을 보고서- 축제를 즐길 자신이 내게는 아직 없다.
20120514
LIVE UNMUTED
“두려움에 묵묵히 지켜만 보던 벙어리. 침묵 앞에 외쳐본다.”
최근, 학교의 일련의 사태들을 바라보며 참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불길은 타올랐고, 한 노동자는 결국 한줌의 재로 남고 말았다. 누군가는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슬픔에 젖었겠고, 누군가는 혼란스러웠으리라. 그러나 이런 다양한 감정들을 너머, 우리 모두가 하나된 지점이 있다. 바로, 같은 고민들을 품은 채 이 사안에 대해 ‘침묵’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시점, 우리가 노동문제에 대해 말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듯, 그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왜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으로 기어코 자신의 몸을 화염에 휘감아야만 했을까. 단순히,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던 한 개인의 비극적인 결말에 불과한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 개인의 죽음을 단순히 그 개인의 문제로 남겨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의 죽음은 사회, 구조적 배경 속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개인은 불합리한 구조 아래 결코 자유 할 수 없다. 노동복지와 고용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작금의 노동환경에서는 이와 같은 사태가 언제든 다시금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1970년 11월. 스물 셋 전태일의 추락을 떠올린다. 그 이야기는 2012년 5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오늘도 어딘가에서는 부당한 노동환경 속에서 제2의, 제3의 전태일이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예전보다는 살기 나아졌다는 말로는 결코 위로할 수 없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너무나 많다. 지난 해 봄, 대학의 청소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인 최저임금제를 보장받기 위해 사측에 맞서 오랜 시간 동안 냉혹한 투쟁을 해야만 했다. 한진의 한 노동자는 부당해고에 맞서 400명의 해고자들을 대표해 309일동안 고공크레인 위에서 칼바람 맞아가며 길고 외로운 싸움을 지속해야만 했다. 재능의 노동자들 또한 사측의 부당함에 맞서 거리에 나선지가 바야흐로 1600여 일이 지났으며,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또한 결과적으로 22명의 희생자를 낳음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이야기들을 자신들과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노동문제는 결코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일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라면, 노동은 차라리 우리 존재의 본질에 가깝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노동자가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라는 단어를 굉장히 낯설게, 혹은 불편하게 받아들인다. 또한 노동문제를 양산하는 불합리한 구조나 제도에 대해 고민하기 보다는, 우리가 흔히 노동자라 칭하는 하부 구조의 노동자가 되지 않으려 오늘도 경쟁과 스펙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달려 나가고 있다.
승자독식 사회에서 앞만 보고 무작정 달리는 법만 배워가는 우리들은 이기적이다. 무관심과 침묵을 깨뜨려야 한다. 이 대학 너머의 비현실적인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노동 문제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 당신이, 또 당신의 형제자매가, 또 당신의 부모님이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일하는’ 노동자가, ‘일’인 노동보다도 인정 받지 못하는 사회. 노동하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여러모로 참 팍팍한 사회. 근로시간, 자살률 OECD 1위. ‘88만원 세대’, ‘3포 세대’. 우리를 규정짓는 이야기들. 이 모든 것들이 불편하게 들린다면,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노동환경과 사회구조에 대해 끊임없이 깨어있어 반응해야 할 것이다. 시대의 아픔과 부조리에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굴종형 인간이 되지 말자. 타인의 고통에 둔감할수록 구조적 폭력은 확대된다. 폭력과 고통을 인식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두려움에 묵묵히 지켜만 보던 벙어리. 침묵 앞에 외쳐본다.
침묵하지 말자.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20120521
정당하지 않은 비판에 반응할 필요 없다. 반응하는 순간 내가 그 비판 아래 자유롭지 못한 사람임을 시인하는 꼴 밖에 더되나. 지혜가 필요한 이유 여기에 있다. 마음이 단단해져야 할 이유 여기에 있다. 세상 모든 소리에 반응할 이유, 없다!
20120524
꿈보다 미래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옆에 있는
한 영혼 영혼.
20120524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동물들을 대하는 국민들의 태도를 통해 알 수 있다. - 간디
평소 존경하는 동물사랑실천협회 박소연 대표. 그 이유는, 옳다고 생각한 것을 실제로 행하기 때문이다. 어떤 배움도 실천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그래서 나는 실천지성(實踐知性) 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박소연 대표는 정의와 신념을 위해 헌신하는 게 어떤 것인지 삶으로 보여준다. 악만 써대면 문제가 해결되느냐고 누군가는 불만을 성토할 수 있겠지만, 불의에 대해 목소리 낼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이 아름답다. 더 많이 고민하고, 공부하고, 단단해져야 겠다.
20120604
음식의 섭취는 개인의 취향임을 알면서도 왜 육식(산업)을 비판할 수 있냐면, 우리가 고기를 즐겨 먹는다는 것은 현 육식 산업을 튼튼히 지탱 해주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야. 근데 우리가 고기를 열심히 소비함으로써 떠받들고 있는 이 육식 산업이 분명히 잘못 되었거든. 공장제 축산이 주를 이루고 있는 이 산업 시스템이, 자연 환경을 망침은 물론 인간성도, 동물권도 말살 시키고 있거든. 물론 우리의 건강까지도!
20120615



